박정현이 기교를 최대한 절제하고 불렀다. 담백하고 깨끗해진만큼 노래가 전하는 우울과 외로움의 깊이와 잔향이 남다르다.
그 어느 박정현의 노래와는 달리 담백한 표현에 반했다. 일상적이지만 대단히 시적으로 압축된, 즉 풍부한 공백으로 예술적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어둔 가사에도 반했다. 그리고는 곡의 대조적인 반전과 결코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이루어낸 그 완성도에 놀랐다.
이 곡의 특징은 절제와 여백이다. 그 가운데 이룬, 가사와 음악의 뛰어난 결합은, 몰래 숨겨둔 비밀스런 감정의 빗장을 무장해제 시켜버리기에 충분하다.
떠남을 가볍게 위장하는 듯한 기타와 읊조리는 두 남녀의 노래로 시작하는 전반부는 익숙할지언정, 범상치 않은 수준의 가사와 선율의 조합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비행을 연상시키는 앞부분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흘려 놓으면서 감정의 반전을 예고하는 지점은, 가슴이 툭 떨어져버리듯한 두 박의 신파조 가락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별 후 도착한 낯선 곳에서처럼, 노래는 그렇게 외로움과 허무함의 중간 어디쯤을 서성인다.
다분히 흔해 보이는 선율 조차도 가사와 더불어 정교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을 가로챈다. 몰입된 감정은 이로 인해 꼼짝 없이 무장해제 된 채 이 노래의 노예가 되고 만다.
'떠남과 시작의 어디쯤'이란 소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진부하고 흔하게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들이다. 이 노래에서 특별할 것 없는 재료가, 소름이 돋도록, 마치 처음처럼 또는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은, 반복해 말하지만, 음악과 가사의 완벽한 조합 덕이다.
익숙함과 낯섬 사이 그 어디쯤에서 그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빚어진 선율과 가사의 결합은, 선택의 기로 또는 두 갈래길 사이에 멈춰 선 바로 그 마음을 형상한듯이 적절하다.
간주를 지나 후반부를 연결하는 피아노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허약함에 대면한 얇디 얇은 유리같은 감정선을 전한다. 이어지는 박정현의 마지막 구절은 체념 후에도 계속되는 나날에 대한 안간힘으로서 노래의 절정이자 마침표다. 듣다 보면, 이쯤에선 박정현의 표현과 해석에 감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질만큼 그녀의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
이 노래를 마무리하는 아코디온 (하림의 연주라고 한다) 의 독주는 에필로그다. 이 노래를 우연에서 필연의 차원으로, 그러니까 노래에서 음악으로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는 달콤한 마지막 한방이다.
얼마 전부터 월간 윤종신을 알고 간간이 들어 오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서 중년의 윤종신이 마침내 좋은 '작품'들을 일구며 음악의 장인이 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이 노래는 그 중, 최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5분 이내의 소박한 노래 형식으로 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중성과 예술성의 세련된 조화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도착 (박정현)
기어코, 떠나가는 내 모습
저 멀리서
바라보는 너,
안녕.
나이제, 깊은 잠을 자려해
구름속에
날 가두채, 낯선 하늘에,
닿을 때까지
낮밤 첫 인사까지 모두 바뀌면
추억, 미련, 그리움은
흔한 이방인의 고향얘기
잘 도착 했어.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아.
차창밖 흩어지는 낯선 가로수
한번도 기댄적 없는
잘 살 것 같아.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날 위로하지 않아.
눌러 싼 가방 속 그 짐 어디에도
넌 아마 없을껄.
어쩌다 정말 가끔 어쩌다
니가 떠오르는 밤이 오면
잔을 든 이방인은 날개가 되어
어디든 가겠지.
저멀리 저멀리.